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집단에 맞서 가장 비폭력적인 수단을 선택한 결정이다. 상대를 해치지 않고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으며, 위협하지도 않는다. 오직 자기 몸을 내어놓는 방식으로 ‘양심’을 요구하는 절체절명의 선택이다.
단식은 단순한 저항이 아니다. 그것은 “더 이상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의사소통 종말의 선언이다. 발언과 조정, 토론과 타협이라는 정상적인 정치 언어가 모두 소진되었음을 알리는 최후의 신호다.
단식하는 한 인간은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는다. 대신 자기 몸을 심판의 무대로 올려놓음으로써, 이 관계에서 누가 힘을 독점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에게 양심이 존재하는지를 극단적으로 가시화한다. 그 순간부터 책임의 시선은 단식하는 한 인간에게서 벗어나, 침묵하고 외면하는 권력 집단으로 향한다.
문제는 이 침묵이 향하는 대상이 단순한 상징이나 명분의 영역이 아니라는 데 있다. 지금 논란이 되는 것은 정치적 체면이나 추상적 가치가 아니라, 시민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서 시작한다.
이른바 ‘먹고사는 문제’다. 이러한 사안은 단지 정책 하나의 선택으로 환원될 수 없다. 지역의 존립과 일자리, 국가 경쟁력, 그리고 수많은 시민의 생계가 한꺼번에 걸려 있다.
반도체 산업 부지 이전 논란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산업 정책의 세부 조정이 아니라, 축적된 산업 생태계와 지역 공동체의 미래를 통째로 뒤흔드는 시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결정을 충분한 설명과 사회적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다룰 수 있다면, 그 권력은 더 이상 시민을 위한 권력이 아니라 시민의 삶을 마음대로 재단하는 권력에 가깝다.
더 심각한 것은 그 다음 단계다. 이러한 권력이 행사되는 구조의 출발점, 즉 시민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칠 대리인을 선임하는 과정에서조차 시민이 아니라 돈에 의해서 선택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대리인은 정책만 결정하지 않는다. 산업의 방향을 바꾸고, 지역의 흥망을 가르며, 교육·노동·주거의 조건까지 좌우한다. 그런 자리를 시민의 판단이 아니라 금품 거래와 사적 욕망으로 채워왔다면, 그것은 단순한 부패나 개인의 일탈을 넘어 민주주의의 시스템 자체가 전도된 상황이다. ‘매관매직’이라는 오래된 단어가 다시 소환되는 이유다.
현대 민주주의 정치는 대리인의 체제다. 시민은 직접 모든 결정을 내리지 못하기에 권한을 위임한다. 그렇다면 최소한 그 대리인은 시민에 의해, 시민에게 설명 가능한 방식으로 선임되어야 한다. 공천이 거래가 되는 순간, 정치에서 시민은 사라진다. 대리인의 자격은 시민의 신뢰가 아니라 돈의 유무로 결정되고, 그 결과 정책은 공공의 판단이 아니라 내부 거래의 산물로 전락한다. 따라서 올바르지 못한 대리인을 내놓고도 제대로 된 설명이 없다면, 그 침묵 자체가 이미 폭력이다.
정치는 조정 경기와 닮아 있다. 양쪽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호흡을 맞춰 노를 저을 때에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간다. 한쪽이 속도와 힘만을 앞세우고 균형을 무시하는 순간, 배는 곧장 기울어진다. 아무리 힘이 강한 개인이나 집단이 있더라도, 더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잃고 기울어진다. 그 끝은 결국 전복의 위험이다. 균형 없는 전진의 끝은 결국 위험이다.
지금 우리 정치의 모습이 그렇다. 설명 없는 결정, 일방적인 권력 행사, 시민이 아닌 돈에 의해 선임된 대리인들. 이는 한쪽 노만 과도하게 젓는 정치의 풍경이다. 그의 단식은 그 배가 이미 기울어졌음을 알리며, 콕스(조정 경기에서 방향과 호흡을 조율하는 사람)인 시민에게 “균형을 되찾지 않고 이대로 가면 전복된다”고 보내는 마지막 신호다. 더 세게 나아가자는 요구가 아니라, 이미 호흡이 어긋나 전복의 위험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리는 경고에 가깝다.
여기 한 인간이 단식하고 있다. 기본적인 삶의 욕구마저 내려놓았다. 설명되지 않은 권력은 책임지지 않는다. 대답 없는 정치는 결국 시민을 굶긴다. 조롱도 뒤따른다. 감정적이라고, 계산적이라고, 심지어 떼쓰는 것이라고까지 비난받는다.
그러나 조롱하는 이들 역시 양심을 가진 존재이기에, 머지않아 스스로에게 묻게 될 것이다. 왜 이 사람은 입을 닫았는가. 왜 말하기를 내려놓고 굶고 있는가. 어째서 정상적인 정치 언어가 작동하지 않는 지점까지 왔는가.
물론 개인마다 정치적 입장이 다를 수 있고, 특정 정치인의 단식을 지지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입장에 있더라도, 소통하지 않고, 응답하지 않는 권력에는 동의할 수 없어야 한다. 단식은 요구가 아니다.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굶고 있는 것은 비단 한 사람의 몸만이 아니다. 기울어진 채 질주하는 민주주의의 배 위에서, 위급한 순간을 마주하게 되는 것은 결국 시민의 삶이다. 지금 우리는 전진을 위한 더 빠른 권력이 아니라, 균형을 회복할 양심의 용기가 필요하다. <저작권자 ⓒ 경인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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