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골문자 첫 발견지는 허난성 안양현 소둔촌... "전쟁·제사·농사 등 중대사 하늘에 묻는 내용"

중국사학계선 "화하족이 아닌 우리 조상 동이족이 만든 문자"...17만여편 갑골조각 거북 배나 동물 뼈 사용, 4600여자 중 1700여자만 해독 상태

이명선 기자 | 기사입력 2024/08/22 [15:35]

갑골문자 첫 발견지는 허난성 안양현 소둔촌... "전쟁·제사·농사 등 중대사 하늘에 묻는 내용"

중국사학계선 "화하족이 아닌 우리 조상 동이족이 만든 문자"...17만여편 갑골조각 거북 배나 동물 뼈 사용, 4600여자 중 1700여자만 해독 상태

이명선 기자 | 입력 : 2024/08/22 [15:35]

▲ 갑골문자

 

은나라는 BC 1600년~1046년쯤 중국에 존재했던 고대국가다. '상나라'라고도 불렸으며 한자의 기원이 되는 문자인 갑골문자를 사용했던 나라다. 사마천의 역사서 사기에는 "은나라는 동이족이고, 주나라는 화하족이다"라고 적혀 있다. 동이족은 우리 조상을 말하고 화하족은 중국인의 조상을 말한다.

 

중국인의 대표적인 한자학자들의 견해를 보면 중국의 세계적인 대문호 린위탕(임어당)은 "한

자는 한국인의 조상인 동이족이 만들었다"고 말했다. 또 중국 창힐문화연구회 쑨펑 회장은 "한자를 처음 만든 창힐은 동이족이다. 이것은 한서, 오기 예기편에도 논증이 있다. 한자를 동이족이 만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고 했다 한다.

 

중국의 사학자 왕위저는 "중화원고서에서 한자의 연원은 대문구문화시대로 소급된다. 대문구문화는 산둥성 지역에서 BC 4300년~2500년 무렵에 나타난 신석기시대 후기문화이며, 동이족의 문화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또 중국의 사학자 장원은 "대문구문화는 동이 소호족문화의 유존으로서 양저문화의 영향을 받아 뒤에 용산문화로 발전해 마침내 갑골문자를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 '날 일' 자의 시대적 발음 변천사


놀라운 사실은 은(殷)나라 갑골음(甲骨音)은 고대 한국어였다고 세계적인 한자음운학 권위자 최춘태 박사는 말한다.

 

최춘태 박사는 갑골음의 개척자인 유창균 박사의 뒤를 이은 후계자로 국어음운학자다. 최 박사는 연구끝에 한자는 고대로 올라갈수록 다르게 발음했는데 '곰 웅'자를 살펴보면 현재는 웅으로 발음하지만 고대로 갈수록 '감-곰'으로 발음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날 일'을 보면 고대 은나라시대에는 '일'로 발음한 게 아니라 '날'과 유사한 음으로 발음했다고 한다. 

 

갑골 문자가 발견된 1899년의 중국은 만주족이 세운 청조(淸朝)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아편 전쟁 이래로 서구 열강의 침략을 받아 나라가 극도로 쇠퇴한 형편에 놓여 있을 때였다. 

   

▲ 갑골문자 발견지는 중국 허난성의 안양현 소둔촌.

 

어느날 허난성 안양시 소둔촌의 한 농부가 밭에서 오래된 거북뼈를 발견했는데, 한두번도 아니고 계속 발견되는 것이었다. 거울도 발견했다. 이 농부는 갑골을 내다팔곤 했는데 자기몸의 피부에 농창이 생겨 앓고 있었는데 약을 살 돈은 없고 자기나름대로 밭에서 주워온 갑골뼈를 갈아서 발라봤다. 그런데 거북과 소의 뼈를 갈아서 몸에 발라보니 상처가 아물었다고 한다.

 

처음으로 뼈를 갈아 만든 약효능을 발견한 것이다. 이것은 용골이라 불렸다. 그러자 소문을 듣고 농한기 농민들이 여기저기에서 동물뼈를 찾아서 약방에 팔았다고 한다. 나중에 용골의 용도가 점을 치고 결과를 기록한 점술가의 점괘를 기록한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

 

그무렵 청조의 국자감(國子監) 대학 총장격으로 왕의영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 갑골문자 적혀 있는 내용들.

 

왕의영은 낡은 청동기와 돌비의 문자를 연구하고 있었고 그 자료도 많이 수집하는 한편, 자기 사비를 털어 가난한 학자를 자기 집에 식객으로 머물게 하면서 연구를 시켰다. 그 식객 가운데 옛 글자를 연구하고 있던 유악(劉鶚)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금석학자인 왕의영이 갑골이 어디서 왔는지 실체를 연구하던 중에 허난성 안양현에서 대량 출토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곳은 예로부터 교통이 발달한 곳으로 현재 500만명이 살고 있는 도시로 황하 지류변에 있다.


청나라 말기에 발견된 갑골문자 유적지인 샤오툰은 3300여년 전 은나라의 수도 은허터로, 가장 많은 갑골문자가 발견된 터였다. 이 일대는 발견 전만 해도 논밭이었다.

  

▲ 당시 은나라 지역에서 출토된 사모무정 유물.

 

갑골은 거북의 속을 파내고 배 안쪽에 문자를 그어냈다. 일부는 동물의 뼈를 사용했다. 이곳에서 갑골조각이 발견된 게 모두 17만여 편이 넘고, 4600자 정도의 갑골문자가 발견됐으나 3분의 1 정도만 해독돼 있다. 1094년 손치양이 '계문거례'에서 해석을 시도한 이래로 1700여자만 풀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 갑골문자의 의미는 해석했으나 갑골문 당시에 읽혔던 발음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명확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그 갑골속에 들어있는 내용은 뭘까. 갑골문자속 내용은 제사(祭祀)·군사(軍事)·천상(天象)·전렵(田獵)·농경(農耕)·임금의 행행(行幸)과 안부(安否)에 관한 것이 많으며 정치·사회·경제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 은나라시대 최초의 여장군 '푸하우'

 

또 갑골속 내용에는 농사에 관한 일을 묻는 일도 많았다 은나라 왕실의 중대사를 담기도 해서 왕비가 딸을 낳을지 아들을 낳을 지 점치는 내용이 있다. 


이 글자가 새겨진 짐승의 뼈는 은나라 사람들이 점을 치는 데 사용한 소뼈와 거북의 등껍질이며, 그 껍질(갑)과 뼈(골) 위에 무엇을 점쳤는지를 적은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은허에서 출토된 갑골문자 거북의 복갑에 새겨져 있는 문자로 한자의 바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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