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환자 동의가 없으면 입원·치료 안되는 정신건강복지법 때문에 아버지 살해돼"

보건소측 “가족·지인이 관리등록신청해야 관리대상이... 환자 동의가 없으면 관리 서비스도 강제할 방법 없어”

한영두 기자 | 기사입력 2021/06/06 [09:51]

“조현병 환자 동의가 없으면 입원·치료 안되는 정신건강복지법 때문에 아버지 살해돼"

보건소측 “가족·지인이 관리등록신청해야 관리대상이... 환자 동의가 없으면 관리 서비스도 강제할 방법 없어”

한영두 기자 | 입력 : 2021/06/06 [09:51]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불법 강제 입원을 막고 환자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에는 환자 본인 동의가 없으면 입원·치료 및 복지 혜택도 제공되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의 살해 위협에도 도움 받지 못하고 결국 죽음을 맞은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SBS 시사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그알)는 지난 5일 방송에서 ‘남양주 존속살인 사건’을 파헤쳤다. 조현병 환자로 인해 발생하는 살인사건 피해자는 70%가 가족이고 이런 사건은 매년 60~70건이나 발생한다. 환자의 인권과 가족의 안전 사이에서 길을 잃은 것은 아닐까. 아버지 대신 정신질환자 복지혜택을 지자체에 문의한 적 있다는 친척들은 모든 절차가 본인 동의에서 막혔다는 점을 지적했다.
 

지난 5월 6일 오전 11시 남양주의 한 다세대주택의 화단에서 60대 남성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의 시신에는 누군가 둔기로 내리쳐서 생긴 상처가 남아있었다. 경찰은 시신 발견 5시간 만에 용의자인 A씨의 아들 B씨를 체포했다.
 

아버지는 그간 아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아온 것으로 파악됐다. 8개월 전까지 B씨와 함께 살았던 A씨가 거처를 옮긴 이유도 아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A씨는 사건 발생 한 달 전 B씨의 행동에 위협을 느껴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위험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돌아갔다.
 

B씨는 과거 조현병을 앓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한 전문의는 B씨가 쓴 섬뜩한 내용의 메모들을 보고 “편집형 조현병으로 보인다”면서도 “이렇게 메모를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의는 “체계적인 망상을 만들지 못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태”라며 “육하원칙에 따라서 작성한 문장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 근래 보기 드물 정도로 엄청난 혼란에 빠져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프로파일러 권일용 동국대 교수는 “미리 준비한 범행 도구가 아니라 현장의 물건으로 공격한 것으로 보아 계획범죄가 아닌 충동적인 범행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입원병원에서는 부모한테 데리고 나가라 했다. 조금 더 치료하고 싶은데 안되겠냐는 말에도 인권문제 때문에 조현병 환자라도 더 있을 수 없다. 가서 또 안 좋으면 다시 입원시키라 했다. 그래서 데리고 나왔다”고 주장했다.
 

이에 정신병원 관계자는 “환자 본인들은 다 정상으로 생각한다. 이번에 개정된 정신보건복지법에서 환자 인권이 워낙 강하게 돼있다. 입원한지 한달만에 입원적합성 조사하게 돼있다. EMS(사설구급대)가 옛날에 수갑 채워 데려와도 됐는데 그런 게 다 부적합 판정이 나 퇴원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2017년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은 무분별한 강제입원을 막겠다는 취지로 개정됐으나 입원뿐 아니라 퇴원 과정에서도 환자 본인의 의사가 최우선하도록 하고 있다.
 

관계자는 “환자들도 그런 지식이 많아서 자기가 불법적으로 입원됐다 싶으면 바로 전화한다. 인권위나 권익위, 보건소에 전화해 바로 조치받는다. 병원은 그러니까 퇴원하라고 말한다. 전문의는 “조현병이 바보되는 병이 아니다. 환청, 망상이 있는데 사고 기능이 유지되는 편집형 조현병은 주변 사람들한테 안 그런척 하기도 하고 공격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또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르면 경찰이 개입하는 응급입원은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급박한 상황, 즉 출동한 경찰 눈 앞에서 사건이 일어나야 가능하다. 이 때문에 피해자 아버지 집에 출동했던 경찰들도 아들을 정신병원으로 보낼 수 없었다고 호소했다. 경찰 측은 “응급입원은 위험성 뿐 아니라 급박성 요건이 있어야 한다. 급박성 요건에서 가장 큰게 보호자가 없어야 한다. 보호자 동의를 받을 수 없는 상황. 보호자가 있는데 응급입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역 내 정신 질환자들을 발굴하고 관리하는 일은 정신건강복지센터가 담당하게 돼있다. 지자체 주무부서인 보건소 측은 “아들은 가족이나 지인이 관리 등록 신청을 하지 않아 관리 대상이 아니었으며 환자 본인의 동의가 없으면 어떤 관리나 서비스도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입장을 전했다.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백종우 교수는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될 때부터 우리도 굉장히 우려했었다. 방향은 인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되 준비가 없다.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하다보면 사고가 나고 사고가 나면 편견이 높아지고 악순환이 될 위험이 높다고 우려했었는데 그게 이렇게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지 몰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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