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동 옛지명은 삼국시대 ‘우주(紆州)’로 1천년 이상 존속... 1914년 우동+봉상 통폐합으로 소멸

백제시대 우소저현-통일신라 우주현-조선 태종 우북·우서·우동으로-1914년 우동면+봉상면 통폐합 봉동면으로-1973년 읍 승격
청동기부터 조선시대 유물 산포지 있고 고분군 및 지석묘 발견... 봉실-배매산성은 백제 축조돼 청동기시대부터 사람 거주 추정
일제시대 지도상 사라진 '우주' 지명을 완주문화원 노력으로 완주산업단지 구암리 일대 '우주로'로 명명해 잃어버린 우주 되찾아

이명선 기자 | 기사입력 2025/01/12 [11:21]

봉동 옛지명은 삼국시대 ‘우주(紆州)’로 1천년 이상 존속... 1914년 우동+봉상 통폐합으로 소멸

백제시대 우소저현-통일신라 우주현-조선 태종 우북·우서·우동으로-1914년 우동면+봉상면 통폐합 봉동면으로-1973년 읍 승격
청동기부터 조선시대 유물 산포지 있고 고분군 및 지석묘 발견... 봉실-배매산성은 백제 축조돼 청동기시대부터 사람 거주 추정
일제시대 지도상 사라진 '우주' 지명을 완주문화원 노력으로 완주산업단지 구암리 일대 '우주로'로 명명해 잃어버린 우주 되찾아

이명선 기자 | 입력 : 2025/01/12 [11:21]

▲ 봉실산 전경. 왼쪽은 옥녀봉.


[시리즈 1회] 봉동의 옛 지명은 삼국시대에 우주(紆州)였다. 그러다가 일제 강점기 1914년 직전까지는 봉상(鳳翔)으로 불렸다. 즉, 우소저현-우주현-우동+봉상-봉동면-봉동읍으로 이어진다.

 

서해안의 바닷물이 들어와서 한자로 표기할 때 굽을 우(紆)자와 물가 주(洲)자로 표기했다고 한다. 지금은 물이 들어오지 않아 물가 주자를 고을 주(州)자로 표기하고 있다. 또 봉상은 한자 새김이 봉황 봉(鳳), 빙빙 돌아날 상(翔)으로, 봉황이 빙빙 돌아 날고 있는 동네라는 뜻으로, 이 보다 더 품위 있는 지명이 있을까.

 

전북 완주군 봉동 일대에는 봉실산을 비롯해 봉암 봉산 비봉 봉강 봉서사 등 봉황과 관련된 지명이 널려 있다.

 

봉동지역은 백제의 우소저현에서 유래해 통일신라 경덕왕(757년) 때 우주현으로 불리면서 조선시대까지 대동여지도에 우주가 뚜렷하게 표기됐다. 그후 우주는 태종9년(1409년) 우주현이 폐지돼 우북·우서·우동으로 바뀌었다. 1914년 우동면과 봉상면을 합해 봉동면으로 통폐합하면서 1000년 넘게 불리던 우주와 관련된 지명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330년(비류왕 27) 백제는 김제에 벽골지를 축조했는데 봉동지역도 서기 330년 이전에 백제의 영역으로 편재돼 있었다고 추정된다. '우주현' 명칭으로 사용된 기간은 통일신라 경덕왕때 757년부터 조선시대 태종때 1409년까지 652년 동안에 이른다. '우주'와 관련된 '우동면'(1914년) 명칭까지 포함하면 무려 1157년간 사용됐다는 얘기다.

 

▲ 만경강 전경. 앞에 마그네다리가 보인다.

 

본지는 2025년 을사년을 맞이해 1000년 넘게 생강 재배 원산지로 알려진 전북 완주군 봉동읍 지명의 역사적 유래 및 자연환경·인물·지역문화 등에 대해 완주군 및 완주문화재단 자료와 봉동읍지·삼례읍지 등 관련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수 차례에 걸쳐 게재할 예정이다.

 

12일 완주군문화유적분포지도(전북대학교 박물관, 2006년)에 따르면, 봉동에서는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각종 유물이 흩어져 있는 유물 산포지가 구만리, 구암리, 둔산리, 용암리, 율소리, 은하리, 제내리 등지에서 발견됐다.

 

또한 구만리에는 삼국시대 초기에 해당되는 고분군으로 보이는 곳이 있고, 은하리에도 삼국시대에 해당하는 고분군이 있다. 지석묘가 용암리, 은하리 등지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둔산리에는 삼국시대 백제에서 축조한 것으로 보이는 봉실산성이 있다. 용암리에도 백제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배매산성(야산산성)이 있다. 이러한 상황으로 본다면 봉동지역에 사람이 거주하게 된 것은 늦어도 청동기시대부터라고 추정할 수 있다. 

 

만경강 주변지역에서도 구석기 유적지들이 발견되고 있어 봉동에서 사람이 거주하게 된 것은 아주 오래된 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낙평리나 신성리 지역에는 유물 산포지나 고분군 등이 조사되지 않아 이곳에 언제부터 사람이 거주하였는지 불분명하다.


또한 낙평리의 바로 위쪽에 해당하는 장기리나 성덕리 일대에서도 유물 산포지나 고분군 등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아마도 먼 예날에는 장기리, 낙평리, 신성리, 성덕리 지역은 만경강이 들이치는 범람원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이 일대는 갈대 등이 무성한 습지였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이 때문에 고대에는 사람들이 거주하기 어려운 지역이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도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하천들이 남아 있다. 

▲ 봉실산 정상 푯말

 

그러다가 현재와 같은 강줄기가 형성되면서 주민들은 만경강변에 제방을 축조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강변에 제방을 축조하고 주민들이 거주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장기리에 있는 비석군이나 제방, 수문 등을 고려하면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사람들이 거주하게 됐다고 추정된다.

 

봉동지역은 북동쪽에 봉실산(372m)이 있으며, 그 줄기가 북동쪽을 감싸고 산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남동쪽으로 만경강이 있어 구릉에서 수렵과 채집, 강줄기를 따라서 어패류를 잡을 수 있는 여건을 형성해 사람이 살기 좋은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다. 

 

청동기시대에는 봉동 일대에도 마한에 속하는 소국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기록이 없 어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이후 삼국시대에 들어와 백제가 마한의 영역을 점령하면서 발 전하게 돼 백제의 영역에 포함됐다.


백제에서는 현재의 봉동과 그 주변지역에 여러 행정구역을 설치했다. 지금의 봉동읍 동부지역(조선시대 봉상면)과 전주시 지역에는 완산주(完山州)가 있다가 뒤에 전주(全州)로 바뀌었으며, 지금의 삼례지역과 봉동지역의 서부(조선시대 우동면)에는 우소저현(于召渚縣)이 있었는데, 통일신라에 우주현(紆洲縣)으로 부르기 시작해 고려시대까지 우주현(紆州縣)으로 이어졌다.  

▲ 봉실산 옥녀봉 정상

 

우소저현은 완주군 삼례읍과 봉동읍, 익산시 왕궁면 일대에 있었던 백제시대의 현이다. 우소제현(于召諸縣) 또는 오소저현(汚召渚縣)이라고 불렸으며, 치소는 봉동읍 제내리로 추정된다. 치소는 지역의 행정 사무를 맡아보는 기관이 있는 곳을 말한다.

 

『대동지지』에 따르면 조선시대 들어와서 과거 우소저현[우주현]에 우동면(紆東面), 우서면(紆西面), 우북면(紆北面)으로 편제됐다. 우동면과 우서면 중간에 현재 삼례지역인 오백조면(五百條面)이 있었다. 그러므로 조선시대의 오백조면도 과거 우주현의 관할지역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우주현을 본향으로 둔 성씨가 박·이·정·황·최 등 5개가 있다고 기록돼 있다. 우주의 북동쪽에는 양량소(陽良所)가 있었는데 이곳은 우양촌(右陽村)의 철소(鐵所)를 뜻한다.​ 

 

대동여지도에는 봉동쪽에 우주폐현이 있는 것으로 돼 있다. 이러한 점으로 연구자들에 따라서 우주현의 치소는 익산시 왕궁면 동용리와 완주군 봉동읍 제내리의 경계에 있는 학현산성(鶴峴山城)으로 보기도 한다.

 

▲ 봉실산에서 바라본 봉동일대 전경

 

학현산은 우주 고을 북쪽에 있다 하여 우북산으로 불리기도 하고 학현산성은 성묘산성 혹은 우북산성으로도 불린다. 

  

조선시대는 만경강을 따라 삼례역(參禮驛)에 이르러 전주나 여산(礪山)으로 통하였다. 당시에는 교통상 외진 곳으로, 이 지역에 창(倉)이 있어서 주위의 세곡(稅穀)을 모아 만경강을 따라 황해(黃海)로 날랐다.​ 

 

전주(全州)는 전라북도 중앙에 위치한 도시(都市)로서 고대 마한(馬韓)의 원산성(圓山城)에서 유래하며, 백제(百濟) 때는 완산(完山), 비사벌(比斯伐) 등으로 불리었는데 신라 진흥왕18(57)년에 완산주로 불렸다.​ 

 

그후 신라 효공왕4(90)년에 견훤이 후백제를 세워 40여 년간 이곳 완산주를 도읍지로 정하였고, 고려 태조가 이곳을 점령해 안남도호부라 했는데 태조 23(940)년에 전주로 칭했다. 

 

그후 승화절도안무사, 전주순의군절도사, 안남대도호부, 전주목을 거쳐 공민왕4(135)년에 완산부가 됐다. 조선시대 태조1(1392)년에 선조(先祖)의 고향이라 하여 완산부로 개칭했고 태종3(1403)년에 다시 전주부로 바뀌었으며, 여러 번의 변천을 거쳐 1949년에 전주시로 개편됐다.

 

지금의 봉동읍 동부지역은 조선시대에 봉상면이라 불리었고, 서부지역은 우동면이었다. 본래 전주군 지역으로 봉상면은 신봉, 명탄, 고천, 명덕, 동간, 봉강, 구만, 서당, 건전, 동촌, 정동, 봉게, 둥리, 점리, 서두,구미, 신화, 보상, 낙상, 낙정, 쌍정, 낙평, 신기, 신풍, 한계, 중평, 신후, 부봉, 대성, 동리, 성덕, 신성, 신상, 신덕, 천내, 용화, 봉림, 읍소, 봉실, 추동, 봉덕, 은상, 은하, 우산, 구교, 장기, 오동, 상원, 하월, 신교, 상지, 임내, 오황, 양정, 사거리, 쌍계, 구정, 탑리, 관음, 무등, 신흥, 만동의 62개 리를 관할했다.

 

▲ 봉동 상장기리에서 바라본 만경강 상류 전경


그러다 1914년 군면 통폐합에 따라 우동면의 주동, 통정, 신성, 창리, 구암, 봉암, 신하, 산정, 산주, 명동, 신둔, 용암, 둔산, 죽동, 구복, 금반, 장구, 신정, 전강, 서초, 제촌, 제상, 만석, 옥동, 신포, 야산, 서당의 17개 리와 창덕면의 월산리 일부 및 익산군 우북면의 덕동, 관덕리의 일부를 병합해 봉상과 우동의 이름을 따서 봉동면이라 칭했다.

 

이후 고천, 구만, 구미, 구암, 낙평, 둔산, 성덕, 신성, 용암, 율소, 은하, 장구, 장기 제내리 등 14개 리로 개편했다.

 

이때 제석면(帝石面)과 우북면(紆北面)을 합해 왕궁면(王宮面)이 되고, 우서면(紆西面)은 오백조면과 합해져 삼례면(參禮面)이 됐다. 

 

그 이전으로 거슬러가 조선 정조13년 『호구총수』(1789년)에 따르면 봉상면에는 거전리, 구만리, 천내리, 신덕리, 보산리, 낙본리, 유편리, 고천리, 장덕리, 명탄리, 유광리, 구미리, 전리, 신후리, 신기리, 중리, 사거리, 신거리, 임내리, 월리, 쌍계리, 내황리, 추동리, 삼암리, 내현리, 은선리, 율소리, 구교 리, 신교리, 장기리, 존지리, 지동리, 저암리가 있었다. 시기에 따라서 마을이름이 다소 변화가 보인다.

 

▲ 봉동읍 완주산업단지 도로명에 명명된 '우주로'


현재의 낙평리는 1914년 보상리, 낙상리, 낙정리, 쌍정리, 낙평리, 신기리, 신풍리 일부, 한계리 일부, 중평리 일부, 성덕리 일부, 동리, 신화리 일부, 신풍리 일부, 중평리 일부, 성덕리 일부, 동간리 일부가 합해졌다. 현재의 신성리는 1914년에 신성리, 신상리, 신덕리, 천내리, 동촌리 일부가 합해져 마을을 이뤘다.

 

이후 1973년 봉동읍으로 승격됐으며, 1975년 봉동읍 사무소를 장기리 285-5에 설립했다. 1993년에는 삼례읍 수계리 일부를 편입하고 1994년에는 구암리, 구미리, 둔산리 일부를 편입해 관할하게 되면서 14개 리가 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14년 4월에 봉동읍 장기리 412로 이전하고 봉동읍 주민자치센터 이름으로 행정업무를 개시했다.

 

현존하는 우주 지명의 물증으로는 우주 황씨 중시조 거중공의 묘소 둘레석에 '우동면 화수회 일동 중수, 단기 4320년 2월' 이라고 표기돼 있다. 서기로는 1987년에 해당한다. 또 우주 황씨 사위인 송선문의 묘비에 '유인 우주 황씨'라고 조선시대에 새겨진 비석이 봉동 제촌리 진천 송씨 선산에 있어 물증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일제시대 지도상에서 '우주'라는 지명이 사라진 뒤 완주문화원의 노력으로 완주산업단지 서쪽 구암리 일대 우주현 지역을 '우주길'로 명명하기로 했다니 천만다행이다. 앞으로 봉동의 옛지명 '우주'를 되살리는 데 우리 모두 앞장섰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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