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회 탐방-'전주고 57 산악회'] "서울숲 남산길 따라 막걸리와 함께 44년 우정의 시간여행"2024년 첫 설연휴 등산기... 응봉산 팔각정~독서당 공원~매봉산팔각정~버티고개생태로~국립극장~남산타워까지 8.4키로 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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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갑진년 새해 설날 연휴인 2월 11일 오전 10시30분.
서울숲역3번 출구 버스정류장에 친구들이 하나둘 속속 도착했다. 오태수, 유준석, 차일옥, 백은호, 이형남, 서동일, 김완희.(정경수, 정성효 친구는 매봉산에서 합류)
참석자가 좀 적다 생각했는데 명절이 낀 비수기에다 우리 산악회가 아직 꽃봉우리 단계다. 그러나 친구들은 밝은 미소와 덕담을 주고받고, 우리 산악회는 80~90세가 돼도 건재할 '전주고 57재경 산악회'를 만들자며 힘차게 산행을 시작했다.
"서울숲 남산길"은 전원 초행이기도 하고 도심 구릉구간을 지나서인지 좀 새롭고 낯설었다. 3시간 정도 소요되는 대체로 평이한 코스다.
유준석 회장 등 지휘부 안내에 따라(자주 멈춰 숙의함 ㅎ) 서울숲공원 9, 10번 출구를 나와 규모와 이름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용비교에서 중랑천을 건너 응봉산 팔각정~독서당 공원~대현산공원~논골사거리~응봉공원~금오산 맨발공원~금오생태다리~매봉산팔각정~버티고개생태로~장충고개~국립극장~남산타워까지 총 8.4키로를 주파하는 코스였다.
매봉팔각정에서 경수와 성효가 합류하니 대군(?)이 된 듯. 하마터면 참석자가 두 자리 숫자가 될 뻔했다. 이곳에 돗자리를 깔고 막걸리와 간식들을 풀어 고삐리처럼 웃고 떠드느라 뭘 먹었는지, 어떻게 마셨는지 기억이 잘 안난다.(태수 피앙세가 이번에는 메밀전병을 준비, 신랑을 부러운 남자로 만듦)
제목이 말해주듯 산행은 도심횡단 구간이 있고 중랑천을 건너는 용비교(고막이 아직도 멍멍), 대현산 공원~응봉공원 구간, 장충동 고개 정도다. 나머지 구간은 대여섯개의 근린공원을 연결하여 도심 숲길을 만든 것으로 종국적으로 끊겨진 남산과 한강을 잇는 코스다.
도착지인 서울코리아의 상징 남산은 여전히 에너지가 넘쳤고, 명절 분위기에 나온 인파들이 우리를 맞아 줬다. 수천 개는 될 듯한 사랑의 자물통 앞에서 초로의 신사, 덩치 큰 형남이가 독사진을 찍는 모습은 우리들의 낭만이 결코 늙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흐린 날씨를 뚫고 우리 서울을 조망하고 4명이 참석한 7반과 다른 반으로 나눠 사진도 찍었다.(나 7반인데 이 모임에서 7반쪽수가 최다)
회장단이 또 숙의를 했고 을지로 방향으로 하산하여 남대문 갈치골목에서 9인의 대부대가 간신히 자리를 잡았다. 코스도 식사도 내 심간에는 딱 맞았다. 회장단의 혜안에 감사하다.
추후 여기에 올 친구들이 좀 아쉬워할 수도 있겠다. 숲속 산책로라곤 해도 과거 판자촌을 대신한 고층아파트가 인접하고 일부 녹지축이 단절된 점은 드라이하게 표현하면 난개발, 고속성장, 달동네사람들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의 현장이다.(dark tourism까지는 아님)
그러나 과거는 이미 흘러갔고, 너무 많이 뒤돌아보면 앞을 못보는 법이니 哀而不傷하고...
세계 10위 경제대국의 수도 한복판을 가로질러 자연과 역사 문화를 아우르는 20리 넘는 녹지축이 있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또 안팎으로 어려운 시절에 이렇게 모여 활보할 수 있다는 것은 실은 큰 복이고 감사할 일이다.
5~6곳의 근린공원을 지나면서 곳곳의 우수 조망명소에서는 한강은 물론 대모산, 구룡산, 우면산, 청계산, 관악산. 또 북으로는 인왕산, 북악산, 삼각산, 북한산 등 서울 남북의 명산을 조망하면서 서울이 명품 도시임을 새삼 체감했다.
남산은 설명이 필요 없을 테고 자료를 뒤적거려 몇개 산을 얘기해본다.
먼저, 응봉산은 매 사냥터로 88올림픽 때 가꾼 개나리 20만주로 유명하다. 운봉산팔각정에서 굽어보면 한강이 일필휘지로 흐르고 대모산, 구룡산, 우면산, 청계산, 관악산이 동서로 통크게 펼쳐져 있다.
응봉산 밑으로 흐르는 중랑천이 긴 세월 오염의 대명사였지만 사실 역사 문화가 가득하고 의정부에서 발원, 중간에 청계천 등 여러 하천과 합류한 가장 큰 한강수계. 그 중랑천이 응봉산 아래에서 한강본류와 합류한다. 응봉산 앞은 동부간선도로, 강변북로, 성수대교 북단 교차로, 경의중앙선 등 어마무시한 트래픽을 쏟아내긴 해도 미안한지 최고의 야경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중랑천 바로 건너는 뚝섬 15만평이 변신한 서울숲공원이 보석처럼 펼쳐져 있다. 기타, 사가독서, 살꽂이 다리, 저자도, 입석포, 뚝섬얘기 등을 화재 삼아 개나리가 만개하는 4월에 두어 명이 와서 캔맥주를 곁들이며 야경까지 즐길 걸 상상해보기도 했다.
대현산 정상과 장미공원, 배수지공원은 스쳐 지나갔고 금오산, 매봉산 팔각정에서는 장쾌하게 흐르는 한강을 배경으로 롯데타워, 동호대교, 서울숲 그리고 성동구 랜드마크인 서울숲트리마제, 한화 갤러리아 포레가 내려다 보인다.
서울숲남산길은 아직까지는 전체 코스를 관통하는 스토리는 없으나 남산과 한강수계 사이의 난개발된 지역을 녹지축으로 연결하고 있다.
어쨌든 그 발상이 대담하고 건설적이며 최근에는 "응봉친화숲길"로 한층 업그레이드 중이다. 늘 그렇듯 시작이 어렵지 일단 시작했으니 뭔가를 좀 입히고 추억거리를 만든다면 조만간 세계적인 도심탐방로로 진화가 기대된다.
생각컨대 서울숲, 한강, 중랑천, 남산등 5개산, 거기에 문화, 역사, 숨은 현대사까지 잘 엮으면 니스의 그 유명한 '영국인 산책로'보다 나을 수도 있겠다.(지중해를 끼고 있긴 해도 대로변 따라 덩그러니 펼쳐져 있을 뿐임. 단지 만들 당시 스토리가 유명)
설날연휴임을 감안해 남산이 포함된 특별 코스를 기획하고 남대문시장 갈치골목 뒤풀이 식사까지 세심히 준비해준 산악회 운영진을 격려해주고 싶다.(칭찬은 회장단을 춤추게 한다). 날씨는 은근히 썰렁했고 미세먼지도 있었지만 함께한 친구가 있는 것만으로 That's it~~. 동일친구의 커피treat을 즐기고 뭔지는 알 것 같은 뿌뜻한 마음을 챙겨 귀가했다. "친구들 고마워!"
이런저런 여건상 아직 동참하지 못한 친구들에게 태수와 준석이 주도할 때 산을 가까이하는 기회로 만들기를 추천하고 싶다.
다음 등산은 3월17일(전고재경 산악회 관악산 시산제, 오태수회장 주관)과 4월14일(57산악회 모악산 탐방) 예정이다.
이제 등산수기도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자꾸 글이 써지는 건 왜일까. 내 경우 산악회 2번 참여한 게 전부다. 동문이며 동기동창으로 졸업 후 44년 만에 만났는데도 별 조건 따지지 않고 격의없이 함께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은퇴 후 프로그램이 또 있을까 싶다.
체력 증진하고 맛있는 음식도 나이 들어 여럿이 먹으니 뭐든 진수성찬이다. 무엇보다 격의없이 아무 얘기나 나눌 수 있으니 뭔 말을 더 덧붙이랴. 57회 친구님들! 돗자리는 깔려 있으니 짬 나는대로 들르시게나. 실제로 오늘 난생 처음 본 친구가 있었는데도 금세 편안해졌다.
이제 우리가 어디서 이런 영양가 있고 실속 있는 놀이터를 찾겠는가 ㅎㅎ. 다시 한번 오태수, 유준석, 차일옥 친구에게 고맙고 내게 이런 글을 쓰게 해 퇴직 후 쉬려고만 하는 내 뇌운동까지 시켜준 준석에게 특별히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日山 김완희 씀